‘부산항 전도사’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장
2024.01.05
인터뷰
사회
국내에서 가장 먼저 개항한 부산항은 오늘날 전국 최대, 세계 7위 규모의 글로벌 허브 항만이다. 바다와 맞닿은 부산은 항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부산항의 확대가 곧 부산의 성장이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등 굴곡진 근현대사를 지나온 부산항은 이제 시민을 위한 친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런 부산항의 역사를 수집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40년간 세관 공무원으로 일했던 이용득(69) 부산세관박물관장이다. 이 관장은 부산항 이야기를 신문에 연재하고 책을 내는가 하면, 최근 개봉한 영화 ‘밀수’에 자문하기도 했다. 부산항과 사랑에 빠진 그를 부산세관박물관에서 만났다.
이용득 세관박물관장. 정수원 PD bluesky@busan.com
■마도로스 시대, 세관 공무원이 되다
“저는 고향이 통영입니다. 어릴 때부터 바다를 늘 끼고 살았죠. 학교도 실업계 계통인 수산 전문학교에 다녔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뒤 배를 타는 선원이 될지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는 ‘마도로스’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크게 유행했었거든요.”
마도로스. 네덜란드 ‘Matroos’에서 유래한 말로 ‘선원’이라는 뜻이다. 부산항에서 출발한 마도로스들은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고국으로 달러를 보냈다. 서독으로 파견 간 광부와 간호사만큼이나 1960~1970년대 인력 수출을 대표했다.
“고민 끝에 마도로스는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제 적성이 배하고는 거리가 조금 멀더군요. 그때 마침 세관 공무원 특별 채용이 열렸습니다. 학교도 수산 전문학교를 나왔고 하니 ‘내 적성을 살려 일할 수 있겠다’ 싶더군요. 그렇게 1975년 세관 공무원이 되었고 마산세관에서 일을 시작했죠.”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한 세관 공무원이었다. 늦은 밤 세관 감시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밀수선이 오는지를 눈이 빠져라 감시하곤 했다. 그리고 1983년, 부산세관으로 자리를 옮기며 평생을 함께할 ‘부산항’을 만나게 된다.
부산항 북항 전경.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항에 빠지다
“부산 세관에 발령받은 그해가 마침 부산세관 100주년이었습니다. 이를 기념해서 부산세관에서 전시실을 열고 책을 내기로 했는데 문패같이 글을 쓸 일이 많았어요. 지금이야 컴퓨터로 인쇄하지만 그때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써야 했습니다. 제가 필체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 그래서 글을 쓸 겸, 전시하고 책에 실을 자료를 모으는 업무에 제가 발탁됐습니다.”
이 관장은 고향과 출신 학교 모두 바다와 관련 있다. 남들보다 항만이나 해양에 대한 이해가 빠르다는 뜻이다. ‘잘 있거라 부산항(1962)’ ‘아메리칸 마도로스(1964)’ 등 노래를 어릴 적부터 들어 마도로스도 친숙했다. ‘바다를 보면 고향 같은 푸근함이 느껴진다’는 그가 부산항에 흠뻑 빠지게 된 건 어쩌면 당연했다.
“예전에는 세관이 아니라 해관이라 불렀습니다. 오늘날 세관은 외국 물품이 들어오면 관세를 매기고, 밀수를 막는 일을 하지만 예전 해관은 항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도맡았습니다. 기상 관측이나 우편 업무, 검역과 어업 허가 등을 모두 했습니다. 즉, 세관의 역사를 보면 부산항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이때부터 그는 본인 업무와 전시실 관리 업무를 겸했다. 2001년 11월에는 부산세관 3층에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전시실 규모가 크게 확장한 것이다. 당시 박물관은 개관 6개월 만에 1만 명의 방문객이 찾을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부산세관박물관은 716㎡ 규모에 부산항과 세관의 과거 사진, 각종 밀수품 등 1000점이 넘는 자료를 전시 중이다.
이 관장은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에 자문 역할을 맡기도 했다.
■부산항 전도사가 되다
이 관장은 2014년 퇴임하며 40년간 이어온 세관 공무원직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부산세관박물관장을 맡고 있다. 후임자를 찾기 워낙 어려운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부산항에 대한 그의 애착과 전문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2019년에는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아 ‘부산항 이야기’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부산항에 대한 그의 열정을 유지하는 원동력은 대체 무엇일까.
“저는 부산항 이야기를 정리하는 게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시대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정보를 접하기 쉬웠거든요. 세관 공무원이 아니면 바다와 관련한 자료를 모으기 어렵습니다. 또 제 주변에 부산항의 발전을 직접 두 눈으로 본 선배도 많아서, 그분들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걸 잘 갈무리해서 세상에 내놓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그는 항만과 세관 관련 전문성을 인정받아 최근 개봉한 영화 ‘밀수’에 자문하기도 했다. 영화 ‘밀수’는 서해안 마을에서 물질하는 해녀 주인공이 밀수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개봉 36일 만에 5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몰이했다.
“예전에는 밀수나 밀항을 미디어에서 다루면 모방 범죄 우려가 있기 때문에 막았어요. 각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며 관세율이 낮아져서 지금은 밀수가 많이 줄었죠. 이런 배경 때문에 ‘밀수’라는 영화가 나온 게 아닌가 합니다. 밀수나 밀항 같은 어두운 역사도 지나고 나면 지역의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앞으로 지역을 소재로 한 더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길 기대합니다.”
이용득 세관박물관장. 정수원 PD bluesky@busan.com
■“지역사 꾸준히 정리하고파”
이 관장은 ‘앞으로 무엇을 더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세월이 참 무심하다’는 한탄을 먼저 했다. 정리하고 싶은 역사,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참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자타공인 부산항 전문가로 손꼽히는 그가 바삐 하고 싶은 일은 또 다른 역사를 집대성하는 일이었다.
“어둠의 역사인 밀수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밀수는 우리나라만 있는 게 아니라 어느 나라든 국경에 바다가 있는 곳에는 다 있습니다. 밀수를 거치면서 나라가 성장하고 또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밀수의 관점에서 인류사, 세계사, 국제사를 바라본 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부산에 살아도 부산항을 잘 모르는 사람은 많다. 도시 개발의 역사는 주목받아도 해양사는 소외되기 일쑤다. 이 관장이 20여 년 전부터 지역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부산항 이야기를 꾸준히 시민에게 건네는 이유다.
“1797년에 영국의 프로비던스라는 이양선이 들어온 적 있습니다. 정조실록에도 나오는데요. 이 사람들이 조선 사람과 말이 안 통하니까 종이에 영어를 썼는데, 이걸 본 우리 조상은 ‘마치 동양화 같더라’고 합니다.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가 어느 역사관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에 너무 소홀한 것이 아닌가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이런 자료를 모아서 시민들에게 좀 더 쉽게 전할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이상배·남형욱 기자 sangbae@busan.com
이런 부산항의 역사를 수집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40년간 세관 공무원으로 일했던 이용득(69) 부산세관박물관장이다. 이 관장은 부산항 이야기를 신문에 연재하고 책을 내는가 하면, 최근 개봉한 영화 ‘밀수’에 자문하기도 했다. 부산항과 사랑에 빠진 그를 부산세관박물관에서 만났다.
이용득 세관박물관장. 정수원 PD bluesky@busan.com
■마도로스 시대, 세관 공무원이 되다
“저는 고향이 통영입니다. 어릴 때부터 바다를 늘 끼고 살았죠. 학교도 실업계 계통인 수산 전문학교에 다녔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뒤 배를 타는 선원이 될지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는 ‘마도로스’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크게 유행했었거든요.”
마도로스. 네덜란드 ‘Matroos’에서 유래한 말로 ‘선원’이라는 뜻이다. 부산항에서 출발한 마도로스들은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고국으로 달러를 보냈다. 서독으로 파견 간 광부와 간호사만큼이나 1960~1970년대 인력 수출을 대표했다.
“고민 끝에 마도로스는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제 적성이 배하고는 거리가 조금 멀더군요. 그때 마침 세관 공무원 특별 채용이 열렸습니다. 학교도 수산 전문학교를 나왔고 하니 ‘내 적성을 살려 일할 수 있겠다’ 싶더군요. 그렇게 1975년 세관 공무원이 되었고 마산세관에서 일을 시작했죠.”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한 세관 공무원이었다. 늦은 밤 세관 감시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밀수선이 오는지를 눈이 빠져라 감시하곤 했다. 그리고 1983년, 부산세관으로 자리를 옮기며 평생을 함께할 ‘부산항’을 만나게 된다.
부산항 북항 전경.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항에 빠지다
“부산 세관에 발령받은 그해가 마침 부산세관 100주년이었습니다. 이를 기념해서 부산세관에서 전시실을 열고 책을 내기로 했는데 문패같이 글을 쓸 일이 많았어요. 지금이야 컴퓨터로 인쇄하지만 그때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써야 했습니다. 제가 필체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 그래서 글을 쓸 겸, 전시하고 책에 실을 자료를 모으는 업무에 제가 발탁됐습니다.”
이 관장은 고향과 출신 학교 모두 바다와 관련 있다. 남들보다 항만이나 해양에 대한 이해가 빠르다는 뜻이다. ‘잘 있거라 부산항(1962)’ ‘아메리칸 마도로스(1964)’ 등 노래를 어릴 적부터 들어 마도로스도 친숙했다. ‘바다를 보면 고향 같은 푸근함이 느껴진다’는 그가 부산항에 흠뻑 빠지게 된 건 어쩌면 당연했다.
“예전에는 세관이 아니라 해관이라 불렀습니다. 오늘날 세관은 외국 물품이 들어오면 관세를 매기고, 밀수를 막는 일을 하지만 예전 해관은 항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도맡았습니다. 기상 관측이나 우편 업무, 검역과 어업 허가 등을 모두 했습니다. 즉, 세관의 역사를 보면 부산항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이때부터 그는 본인 업무와 전시실 관리 업무를 겸했다. 2001년 11월에는 부산세관 3층에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전시실 규모가 크게 확장한 것이다. 당시 박물관은 개관 6개월 만에 1만 명의 방문객이 찾을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부산세관박물관은 716㎡ 규모에 부산항과 세관의 과거 사진, 각종 밀수품 등 1000점이 넘는 자료를 전시 중이다.
이 관장은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에 자문 역할을 맡기도 했다.
■부산항 전도사가 되다
이 관장은 2014년 퇴임하며 40년간 이어온 세관 공무원직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부산세관박물관장을 맡고 있다. 후임자를 찾기 워낙 어려운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부산항에 대한 그의 애착과 전문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2019년에는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아 ‘부산항 이야기’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부산항에 대한 그의 열정을 유지하는 원동력은 대체 무엇일까.
“저는 부산항 이야기를 정리하는 게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시대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정보를 접하기 쉬웠거든요. 세관 공무원이 아니면 바다와 관련한 자료를 모으기 어렵습니다. 또 제 주변에 부산항의 발전을 직접 두 눈으로 본 선배도 많아서, 그분들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걸 잘 갈무리해서 세상에 내놓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그는 항만과 세관 관련 전문성을 인정받아 최근 개봉한 영화 ‘밀수’에 자문하기도 했다. 영화 ‘밀수’는 서해안 마을에서 물질하는 해녀 주인공이 밀수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개봉 36일 만에 5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몰이했다.
“예전에는 밀수나 밀항을 미디어에서 다루면 모방 범죄 우려가 있기 때문에 막았어요. 각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며 관세율이 낮아져서 지금은 밀수가 많이 줄었죠. 이런 배경 때문에 ‘밀수’라는 영화가 나온 게 아닌가 합니다. 밀수나 밀항 같은 어두운 역사도 지나고 나면 지역의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앞으로 지역을 소재로 한 더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길 기대합니다.”
이용득 세관박물관장. 정수원 PD bluesky@busan.com
■“지역사 꾸준히 정리하고파”
이 관장은 ‘앞으로 무엇을 더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세월이 참 무심하다’는 한탄을 먼저 했다. 정리하고 싶은 역사,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참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자타공인 부산항 전문가로 손꼽히는 그가 바삐 하고 싶은 일은 또 다른 역사를 집대성하는 일이었다.
“어둠의 역사인 밀수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밀수는 우리나라만 있는 게 아니라 어느 나라든 국경에 바다가 있는 곳에는 다 있습니다. 밀수를 거치면서 나라가 성장하고 또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밀수의 관점에서 인류사, 세계사, 국제사를 바라본 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부산에 살아도 부산항을 잘 모르는 사람은 많다. 도시 개발의 역사는 주목받아도 해양사는 소외되기 일쑤다. 이 관장이 20여 년 전부터 지역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부산항 이야기를 꾸준히 시민에게 건네는 이유다.
“1797년에 영국의 프로비던스라는 이양선이 들어온 적 있습니다. 정조실록에도 나오는데요. 이 사람들이 조선 사람과 말이 안 통하니까 종이에 영어를 썼는데, 이걸 본 우리 조상은 ‘마치 동양화 같더라’고 합니다.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가 어느 역사관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에 너무 소홀한 것이 아닌가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이런 자료를 모아서 시민들에게 좀 더 쉽게 전할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이상배·남형욱 기자 sangbae@busan.com